Recorder & Life Story
[공연리뷰]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내한공연 본문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내한공연
2014. 3. 12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Performer
Giovanni Antonini, recorders, chalumeau & direction
Tindaro Capuano, chalumeau
Stefano Barneschi, Marco Bianchi, violins
Liana Mosca, viola
Paolo Beschi, violoncello
Giancarlo De Frenza, contrabass
Michele Pasotti, archlute
Riccardo Doni, harpsichord
Program
G.F.Handel : Concerto op.6 no.7 in B flat major
G.P.Telemann : Concerto in C major for recorder, strings & b.c.
A.Vivaldi : Follia in D minor, RV 63 for 2 violins & b.c.
G.P.Telemann : Concerto in D minor for 2 chalumeau, strings & b.c. TWV 52:d1
A.Vivaldi : Concerto in G minor for strings & b.c. RV 157
A.Vivaldi : Concerto in C major for flautino, strings & b.c. RV 443
공연이 끝난지 불과 3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 벌써 어제의 연주회가 되었다. 지금 뭔가를 끄적거리지 않는다면, 내일이면 잊혀질 것 같아서 몇 자 적기 시작한다.
그들이 왔다!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이탈리아의 시대악기 연주단체를 대표하는 그들이 2014년이 되어서야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지금도 물론 뛰어난 앙상블이긴 하지만, 소위 그들의 최고의 전성기는 20세기 말이었기에 그 만큼 방문이 늦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시 대한민국의 고음악은 그야말로 불모지였으니 말이다. 어찌됐건 이번 그들의 첫 방문은 필자를 포함한 리코더와 고음악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조반니 안토니니의 리코더 연주를 눈 앞에서 듣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공연이 있기 훨씬 전 지인으로부터 이번 공연에는 엔리코 오노프리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 조반니 안토니니와 더불어 루카 피앙카, 엔리코 오노프리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를 상징하는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이미 수 년전에 오노프리와 피앙카는 이 팀을 떠나 새로운 팀에 안착했다는 것이다. 연주자들의 이동이야 워낙 흔한 일이기에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니겠지만, 뭐랄까.. 이들의 연주를 꽤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입장에서는 오랜 친구들을 떠나보내는 느낌마저 들어서 가슴 한켠엔 아쉬운 마음이 꽤 컸다. 한편으론, 얼마전부터 이 팀에 너무 소홀(?)했구나 하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기존의 굵직한 멤버들에 대한 향수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첫 곡에선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오노프리와 피앙카가 함께 한 헨델의 콘체르코 그로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와닿아서인지 약간의 아쉬움마저 들었다. 물론, 편성자체도 음반에 비해서는 작은 편성이었기에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이 팀에 대한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앙상블보다도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에게는 '다이내믹' 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첫 곡의 연주에서도 이 부분은 확실하게 표현되었다. 현악기 주자들의 섬세하고, 강렬한 보잉은 관객들이 숨죽이고 듣게 만드는 호소력을 지녔다. 하지만...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들어왔던 그들의 연주에서 느껴졌던 '강인함' 이나 '확고한 의지' 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두 번째 텔레만의 리코더 협주곡 C장조에서는 안토니니가 알토 리코더를 들고 무대에 섰다. 이젠 머리도 새해얗게 변해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가 들어서면서부터 앙상블은 그의 지휘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는 심지어 관객들에게까지 지휘를 시작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론 최대한 연주를 들으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연주에 몸이 반응하는 것을 참기는 무척 힘들었다. 안토니니는 심지어 구둣발로 바닥을 탁탁 치면서까지 연주를 했는데, 그마저도 연주의 일부로 느껴질 정도로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비발디의 폴리아는 역시나 최근 오노프리가 만든 앙상블 이마지나리움의 연주를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도 한 연주자에 대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힘들 줄은 몰랐다. 19개의 변주를 통해 상당히 다양한 다이내믹을 구사하면서 순간순간 예기치 않은 템포변화와 여러 장치들을 심어 놓았음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후반부의 강렬한 보잉은 여지없이 등장했지만, 그 가운데 있어야 할 '비르투오즘' 은 찾기 어려웠다. 제1바이올린을 맡고, 현악 앙상블을 리드하는 스테파노 바르네스치의 역할은 역시나 훌륭했다. 변화무쌍한 변화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은 안토니니 다음으로 이 앙상블을 리드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녔다고 보여졌지만, 그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어느 정도 자신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절제된 모습으로 표출되는 듯했다.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가 아닌 다른 앙상블의 폴리아 연주였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앙상블에 대한 기대치는 엄청나게 높았었나 보다.
2부 첫곡인 두 대의 샬뤼모를 위한 텔레만의 협주곡 D단조에서 안토니니는 틴다로 카푸아노와 함께 샬뤼모를 연주했다. 카푸아노는 알토 샬뤼모를, 안토니니는 테너 샬뤼모를 연주했는데, 처음에는 카푸아노와 안토니니가 소프라노와 알토 샬뤼모를 연주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야 이들이 각각 알토와 테너를 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샬뤼모가 이조해서 연주한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해서 처음에 착각했던 것 같다. 샬뤼모는 리드는 클라리넷과 유사한 형태이지만, 아랫관은 키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리코더와 매우 유사하고, 운지법도 비슷하다. 같은 파트의 샬뤼모가 아닌 알토와 테너를 위한 협주곡에서 두 대의 샬뤼모는 대등한 역할을 맡지는 않았다. 이런 부분은 특히 중간에 현악파트가 없이 등장하는 카덴차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테너 샬뤼모를 연주한 안토니니는 이 대목에서 충실하게 콘티누오의 역할을 담당했고, 윗 파트의 카푸아노를 보조하거나, 가끔 대꾸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리코더를 비롯한 다양한 바로크시대 관악기에 능통했던 텔레만이기에 이 협주곡 또한 관악기에 대한 배려가 돋보였다. 특히, 한국관객들을 배려한 것인지 두 번째 느린 악장의 후반부에는 아리랑의 선율을 넣는 센스까지 보여줬다. 이에 감동을 받아서인지 관객들은 2악장이 끝나자마자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느린 악장의 여운 끝에 등장하는 3악장의 도입부가 기대되었는데, 그 순간을 놓친 것이 무척아쉬웠다.
비발디의 현악 협주곡 RV 157은 첫곡인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와 같은 편성이었고, 앞선 연주에 비해 훨씬 훌륭한 일체감을 선보였다. 특히, 콘티누오 파트의 약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나름 보조적인 역할 위주였던 비올라의 독주 대목도 훌륭했다. 첼로의 파올로 베스치는 이 곡을 포함해서 여러차례 강렬한 보잉을 구사하는 바람에 활털이 날리는 모습도 두 차례 정도 보여 주었다. 안정적이면서도 현악기간의 일치된 다이내믹의 감흥을 맛볼 수 있는 연주였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비발디의 리코더 협주곡 C장조 RV 443은 한국팬들에게 꽤 오래전부터 안토니니라는 연주자를 알게 한 곡이다.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 연주한 'Viva! Vivaldi' 실황에서 안토니니는 이 작품을 연주했는데, 그의 다이내믹한 연주와 화려한 몸동작은 유튜브 등을 통해 당시 한국팬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전해 주었었다. 그는 이번 연주회에서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온 몸으로 연주하고, 온 몸으로 지휘했다. 특히, 느린 악장에서의 끊임없는 장식은 '내가 바로 안토니니다!' 라고 증명하는 듯했고, 끝자락에서의 길게 늘어지는 템포는 실황에서나 가능한 대목이었기에 연주자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최근 레코딩에서 그의 리코더 연주를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탓에 그의 리코더 연주에 대해서 다소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의 연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마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 것 마냥 그의 연주는 여전히 확신에 차 있었다. 앞 뒤로 빠른 악장에서 몰아 붙이는 모습은 여전했고, 빠른 패시지에서도 명확하고 정교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앙코르로는 두 곡을 연주했다. 첫 곡은 두 대의 샬뤼모를 위한 협주곡인데, 작곡가가 불분명해서 귀가하는 길에 최보인군과 수차례 웹서핑을 시도한 끝에 그라우프너의 두 대의 샬뤼모를 위한 협주곡 C장조 3악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앙코르는 메룰라의 치아코나... 역시나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를 대표하는 곡이었고, 특히나 오노프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곡이었다. 아... 난 여전히 그가 그립다.
연주회가 끝나니 시간은 10시 가까이 되었고, 기다린 끝에 그의 사인도 받을 수 있었다. 상당히 피곤해보이는 안토니니.... 그래도 한 명 한 명 사인해주면서 보내는 따스한 시선과, 함께 사진 찍기를 즐겨하는 모습에 그의 따뜻한 인품도 엿볼 수 있었다. 오늘 연주회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다만 과거 멤버들에 대한 아련함이 주는 잔상들이 내게는 약간의 방해요소이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 음악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지 내 의지를 주장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초창기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의 연주를 듣고 자란 젊은 멤버들로 재구축된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이젠 그들의 지금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존중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글/ 박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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