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er & Life Story
[공연리뷰] 이대욱 피아노 독주회 - (I) 전원과 자연 본문
2011. 9. 22 pm.8:00 금호아트홀 l 이대욱 [piano]
P R O G R A M
전원과 자연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5번 ("전원") Ludwig van Beethoven Piano Sonata No.15, Op.28 ("Pastorale")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템페스트") Ludwig van Beethoven Piano Sonata No.17 Op.31/2 ("Tempest")
I N T E R M I S S I O N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소곡 순례의 해 제1년 "스위스" Franz Liszt Anness de pelerinage, premiere annee "Suisse", S.160 |
피아니스트 이대욱은 그 중에서도 총 세 부분을 맡았는데 각각 '전원과 자연', '소나타의 진화', '반영과 투쟁' 이라는 주제하에 리스트와 베토벤을 엮는 것이다. 지난 22일 연주회는 그 첫 번째 '전원과 자연' 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리스트와 베토벤을 연관시키면서 리스트가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베토벤의 교향곡이 단 한 곡도 없다는 것이다. 이 곡 만큼 이 둘을 극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레퍼토리도 드물텐데, 2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빠진 중요한 레퍼토리가 못내 아쉽다. 아마도 이번 연주회는 베토벤의 작품과 독자적인 리스트의 작품들의 연관성을 찾고자 하는데 있는 것 같다. 이번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전반부에 베토벤의 '전원'과 '템페스트' 라는 부제가 붙은 소나타와 후반부에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포함한다.
첫 곡으로 연주된 베토벤의 소나타 15번. 연세는 조금 되어 보였지만, 뭐랄까... 소년 같은 인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연주자는 조심스레 자리 정돈을 하고 연주를 시작했다. '전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소나타 15번은 1악장과 4악장에서는 목가적인 전원의 풍경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실제로 무척이나 변화무쌍한 변화가 내재되어 있는 곡이다. 부제가 작품의 완성 뒤에 붙여진 만큼 부제와 곡의 성격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극과 극의 분위기로 치닫는 이 작품은 마냥 한가롭지만은 않다. 피아니스트는 상당히 신중하다 못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치 미스 터치라도 있으면 안 되는 강박관념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연주가 무르익어 갈 수록 연주자의 타건을 통해 조심스러움 보다는 작품으로의 몰입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악장과 악장 사이를 길게 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잠깐의 휴식(?)을 통해 손과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연주자의 모습은 다음 악장으로의 준비과정처럼 보여져서 전혀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최근 들어 등장하는 당대의 관습의 적용일까? 페달 사용 또한 상당히 자제하는 듯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논레가토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 같다.
두 번째 그 유명한 17번 템페스트. 이 곡에서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강인함을 한껏 과시했다. 아니 과시라기 보다는 증명했다고 보는게 맞겠다. 15번에 비해 더 격렬함 넘치는 이 작품을 연주자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급변하는 다이내믹에서도, 물 흐르듯이 전개되는 느린 악장에서의 유연함에서도 연주자의 손끝은 강한 확신에 차 있었다. 저음부의 묵직한 타건과 페달링이 동시에 전개되면서도 음 하나하나는 뭉개짐 없이 묵직하고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명징'하다는 표현이 바로 떠오를 만큼 그의 연주는 폭발적이면서도 논리정연했다. 여전히 악장 사이에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은 있었지만, 이젠 그 시간이 연주의 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앉았던 자리는 3열의 우측이었는데, 연주자의 손을 볼 수는 없어도 피아노 덮개 안 쪽에 비치는 해머의 타격을 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부분 중의 하나였다.
인터미션 후, 이제 기다리던 리스트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피아니스트는 간략하게 9곡의 악장을 한글명으로 소개해주었다. '사려 깊은 분이구나..' 라는 인상을 받는 순간 시작되는 연주... 뭐랄까.. 앞선 곡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면서 감상에 들어갔다. 분명히 지속선상에 있는 작품이었다. 곡의 형식 자체는 소나타와는 다르지만, 각각의 주제를 갖고 있는 악장들의 구조와 전개는 상당히 베토벤의 것과 닮아 있었다. '순례의 해' 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도피의 해' 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남의 아내를 꼬드겨서 함께 도피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순례라고 표현하기에는 심하게 무리가 있다. 연인과의 도피, 그 중에서 스위스에서 보냈던 순간에 쓰여진 이 작품들은 그래서인지 다양한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분명히 행복한 순간들도 드러나지만, 어느 순간 급변하는 절망의 순간 또한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피아니스트 이대욱의 장점이 완성도 높게 결실로 맺은 가장 큰 이유는 베토벤과 리스트의 관계 뿐만 아니라 리스트와 이대욱의 관계 또한 절묘하게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는 당대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피아노로 표현하는데 몰두했었다. 그 만큼 그에게 있어서 피아노는 여러 악기들의 조합군이나 다름없었을텐데, 피아니스트 이대욱 또한 지휘자의 경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을 오케스트레이션화 하는데 그야말로 적격이 아니었을까 싶다. 베토벤과의 동질감과 더불어 리스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색채감이 부가적으로 묘사되었다. 특히 현란한 테크닉을 요하는 부분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연주자의 몰입이 돋보였고, 현란하다 못해 혼란스러울 정도의 패시지에서도 연주자는 주제를 명확히 했다. 가끔 동호회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연주를 할 때 띄어쓰기를 잘 해야 한다고... 악기연주는 악기로 말하고 노래하는 것인데, 여기서 띄어쓰기를 제대로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연주하는 것에 관해 모른다는 것일테고, 그 음악을 듣는 이들을 이해시킬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누군가를 설득시키려면, 자신이 말하는 것에 대한 앎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대욱의 연주는 관객들에게 이해와 동시에 감동을 통한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이대욱의 시리즈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 세번 째 악장 '전원' 과 베토벤의 소나타 '전원'을 같이 배치하면서 연주회의 주제를 '자연과 전원' 으로 제시한 것 같은데, 그보다는 이 시리즈들을 통해 베토벤과 리스트의 공통분모를 찾는데 주목하는게 바람직할 것 같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얻은 것이라면 베토벤과 리스트의 작품을 통한 감동 외에도 피아니스트 이대욱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도 더해야겠다. 그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서 내면의 겸손함과 시종일관 최선을 다하려는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경력과 실력에도 거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연주자의 모습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다음 시리즈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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