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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소년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0. 10. 13. 11:40

지난주...토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일부러 찾은 곳은 지하철 4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사당역. 그 지하에 자리잡은 작은 공간은 음악가들을 위해 준비된 지하철 예술무대.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청년의 연주가 있다기에 그 곳을 찾았다. 아내도 곧 온다고 했기에 함께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들뜬 마음으로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기술상의 문제인가...뭔가 문제가 있는듯 공연은 지연됐다. 잠시후 한 사람이 약간의 문제를 설명하고 엔지니어가 오는 대로 시작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는 테스트 겸 한동안 개인 리사이틀(?)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그 시간이 길었지만, 노래 하나는 잘 하기에 기다림을 참을 수 있었다. 드디어 시작되는가!! 아니었다!! 오늘의 첫 데뷔무대라는 플룻주자의 연주가 먼저 있었고, 뒤이어 공연이 끝나고 빨리 가야 한다는 재즈 댄스하는 한 무리가 나와서 터질듯한 굉음(?)과 함께 혼돈(?)을 안겨주었다...

이제...그 분이 오셨다..ㅎㅎ 사회를 보시는 분은 그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하는 일은 무엇이며, 2년전부터 함께 공연을 해 왔다는 것이며, 과거에는 리코더 소년이었는데 이젠 리코더 청년이 되어 돌아왔다는 얘기들로 그를 소개했다. 곧 그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MR로 만든 CD와 함께 조성모의 노래 두곡이 흘러나왔다. 멋드러진 반주위로 리코더가 사뿐이 내려 앉았다. 그 고운 투명한 소리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이 느낌은 나 혼자만이 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 가득 둘러싼 이들의 호기심과 감탄에 찬 눈빛이 그들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 다음으로 반 아이크의 "사람들은 저녁에 무엇을 할까?"가 그의 손 끝에서 흘러나왔다. 단언컨데, 국내에서 난 그런 연주를 듣지 못했다. 그의 자신에 찬 호흡과 운지, 그리고 풍부한 제스처는 교회앞, 골목길에서 연주하던 반아이크를 사당역으로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환호, 환호...사람들이 언제 반아이크를 만나봤을까. 하지만, 그들은 동일한 감성으로 이미 그를 만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그의 준비된 프로그램인 듯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선 앵콜이 흘러나왔고, 모두가 다시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했다. 사회자는 마지막으로 한 곡을 더 연주할 것을 얘기했고, 더 이상 앵콜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법의 성...소프라노 리코더의 맑고 깨끗한 음색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연주후 만난 그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어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뒤 아내와 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라는 것은 장소에 따라 그 가치가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장소..즉 공연장의 규모나 시설에 따라 그 음향적인 면은 분명하게 달라지겠지만, 그 근본 자체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닐까. 프란스 브뤼헨이 동네 으슥한 골목길에서 리코더를 불었다고 해서 그 연주를 싸구려로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리코더 소년의 연주는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리코더라는 악기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었다. 반 아이크를 들으며 사람들은 리코더의 예술성에 눈과 귀를 열었을 것이다.

돌아오며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결론은 한가지였다. 리코더 소년처럼 길 위의 사람들에게 음악을 소개하고 전하는 이들도 필요하고,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음악을 전달해주는 이들도 필요하다. 그 둘의 목표점은 같기에 어느 하나가 더 우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목표점을 향해가는, 결국은 하나로 모아질 두 갈래길에서 각자의 제 몫을 감당할 뿐인 것이다.

200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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