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er & Life Story
수평(水平) 본문
2001년 가을에 CDP 하나를 장만했다. 집에 있는 오디오도 CDP만 망가져 있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갈증만 더 심해져서 큰 출혈을 감수하고 강변역 테크노마트에 가서 한 놈 골라왔다. 사 오면서도 왜그리 마음이 편하지 않던지...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그 부담감은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음악 듣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그래서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살았는데, 덕분에 CDP를 너무 학대했던 모양이다. 밖에 나갈 때면, 늘 갖고 나가서 틈만 나면 돌리고, 또 돌렸으니 병이 날만도 했다. 지금껏 1년에 한 차례 정도는 병원에 들렀고, 잔병치례도 종종 했다. 병원에선 CD를 넣고 뺄 때도 조심해야 한다던데, 내 덜렁덜렁한 성격에 급하고 넣다 빼기를 자주 했나보다.
그래도 별탈 없이 지금껏 내 귀를 즐겁게도, 우울케도 해줬는데, 요즘 들어서 종종 탈을 보인다. 플레이를 돌리면 열에 대여섯은 디스크가 없다고 나오는 거다. 흠...보통 CDP를 가방에 넣으면 90도로 세워지게 되는데, 동시에 안에 들어있는 CD또한 90도로 세워져서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씽씽 잘 돌아갔겠지만, 이젠 나이도 먹었고, 그래서 예전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CD를 넣다 빼기도, 렌즈에 먼지가 앉았을까 입으로 불어보기도 수차례 해봤지만 별 효력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해 본 방법은 가방을 90도로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CDP는 바닥과 수평이 될 테니 말이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100퍼센트 성공이었다. 가방을 세움과 동시에 곧이어 기~잉 소리를 내며 플레이가 되는게 아닌가? 순간 속에선 "앗싸!!"가 절로 나왔고, 녀석도 신이 났는지 가방을 원래대로 해도, 잘 돌아가는 거다. 흠..시동만 걸리면 되는구나...다행이었다. 만약 안 그랬으면 전철이건 버스건 가방을 직각으로 들고다녀야 되지 않는가. ^^
골치를 썩힌 만큼 배우는 게 있는 걸까? 덕분에 한가지 가르침을 얻는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은 수평적인 상태..그것은 순간 나에게 '공정(公正)'이라는 의미로 와 닿았다. 비행기 양 날개의 수평한 관계처럼,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은 반듯한 삶...인간이기에 그 실천이 완전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지향해야 할 목표점으로 삼고싶은 욕심이 순간 생긴다.
200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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