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er & Life Story
리코더 이야기 - 1. 리코더의 명칭과 구조, 재질 [flute & 8/9월호] 본문
리코더 이야기 1 - 리코더의 명칭과 구조, 재질
리코더는 바로크시대 뿐만 아니라 중세와 르네상스, 심지어는 그 이전 고대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닌 악기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악기여서였는지는 몰라도 친근한 악기의 이미지가 한 때는 장난감으로까지 둔갑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 때 ‘피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국악기 중에 동명의 악기가 있기도 해서 오늘날에는 리코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피리라는 이름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17, 18세기에 플루트(Flute)가 리코더를 지칭하는 말이었던 것 만큼, 플루트를 우리식으로 표현하는 이름으로 피리라는 단어만큼 적합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리코더는 세로피리, 오늘날의 플루트는 가로피리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 플루트를 지칭하는 트라베소의 의미가 가로로 부는(transeverse)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르는 ‘리코더(Recorder)’는 영국식 이름, 즉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명칭으로 녹음을 뜻하는 ‘Record'에서 왔고, 실제로 녹음기인 레코더와 같은 철자를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각 국가별로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독일에서는 리코더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블록(block)이 있는 플루트라는 의미로 ‘블록플뢰테(Blockflöte)’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에서는 달콤한 음색을 가진 플루트라는 의미의 ‘플라우토 돌체(Flauto dolce)’라고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리코더의 취구 부분이 새의 부리(bec)를 닮았고, 음색도 새소리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플루트 아 베크(Flûte à bec)’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 이름들 외에도 이탈리아를 비롯해서 당시 유럽에서는 간단하게 ‘플라우토(Flauto)’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르곤 했다. 이런 이름은 바로크시대 필사본들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언급한 이름들에서 알 수 있듯이 공통으로 들어간 단어가 바로 ‘플루트(Flute)’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종종 각종 리코더 악보와 음반들에서는 리코더를 플루트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www.wikimedia.org)
리코더와 다른 관악기들과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블록(Block: A)을 통해 발성을 한다는 것이다. 리코더는 블록과 윗관의 내부 천정 사이의 호흡이 지나가는 통로인 윈드웨이(Wind way: B)를 통과한 호흡이 라비움(Labium: C)을 통해 갈라지면서 발성이 된다. 리코더의 음색은 바로 여기서 결정된다. 리코더는 각기 다른 재질로 되어 있지만, 이 블록은 모두 같은 재질을 사용한다. 주로 사용하는 목재는 삼나무로, 다른 나무에 비해 연주시에 생기는 수분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traversière Hotteterre, Principes de la Flûte, 1707
리코더는 총 8개의 지공(Fingering hole)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리코더의 지공은 위에서부터 1~7번, 뒷면 상단에 있는 홀은 0번으로 번호를 매긴다. 왼손으로는 0번과 1~3번까지를, 4~7번까지는 오른손으로 막는다. 0번 홀은 옥타브 키(Octave Key)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운지는 다소 가변적이지만, 일반적으로 저음부의 운지시에는 0번 전체를 막고, 고음부의 운지를 할 때는 0번 홀을 1/3~1/4 정도만 연다. 이런 방법을 써밍(Thumbing)이라고 한다. 아래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하는 6, 7번 홀은 더블 홀(Double Hole)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바로크 이전과 바로크시대 중반 무렵에도 이 6, 7번홀은 주로 싱글 홀로 제작되곤 했다. 하지만, 싱글 홀로는 저음역대의 반음 음정을 정확하게 내기 어려운 단점이 있어서 지금과 같이 더블 홀로 개량되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연주자 모두를 배려했었다. 당시에는 제일 마지막 7번 홀을 두 개 뚫어서 각 주자의 편의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 구멍을 왁스(Wax) 등으로 막아서 사용하곤 했기 때문에 왼손잡이 연주자도 편리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Sebastian Virdung, Musica getutscht und ausgezogen, 1511
리코더는 일차적으로 내외부의 구조에 따라 다양한 음색으로 구분되고, 그 다음으로는 재질에 따라 더 세분화된 음색으로 나뉜다. 보통 단풍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회양목, 자단, 올리브, 흑단 등의 나무로 제작하는데, 같은 형태의 리코더라고 하더라도 재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무른 재질의 단풍나무와 배나무는 부드러운 음색을 갖고 있는 반면, 흑단 처럼 단단한 재질로 만든 리코더는 상당히 강하고 예리한 음색을 갖고 있다. 이처럼 각각의 특성에 따라 적용되는 범위 또한 각기 다르다. 리코더가 콘소트 악기로 각광을 받던 르네상스 시대의 콘소트 악기는 보통 단풍나무로 제작한다. 앙상블을 이루는데 있어서 단풍나무로 만든 악기들은 선명한 음색과 균형잡힌 파트간의 친화력으로 앙상블 연주자가 더 수월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바로크시대에 독주악기로 급부상하게 된 리코더는 회양목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다. 연주자들은 회양목 중에서도 남미지역에 비해 더 단단한 강도를 갖고 있는 유럽산 회양목을 선호하는데, 흑단처럼 한 쪽으로 치중된 성격이 아닌 다양한 음악을 고르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프라니노 리코더의 경우에는 연주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협주곡 위주다 보니 독주자의 기량을 차별되게 표현하기 위해서 흑단으로 제작된 악기를 주로 사용한다. 여기에 옵션으로 추가할 수 있는 것이 당시의 상아장식이다. 주로 윗관의 마우스피스 부분과 관과 관 사이의 연결 부위를 장식할 때 사용되곤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장식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음을 더 증폭해주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리코더는 보통 a'=442Hz 로 조율된 악기들이 제작된다. 예전에는 a'=440Hz 의 악기들이 사용되었던 반면 갈수록 높아지는 현대의 피치에 따라 리코더도 조금 높은 음고로 제작되고 있다. 물론, 바로크시대와 그 이전 시대를 통틀어서 사용되었던 다양한 피치의 리코더들이 오늘날에도 개인 제작자들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 가장 많이 적용되는 피치는 역시 a'=415Hz 의 악기들이고, a'=440Hz, 460Hz, 392Hz 등 시대와 지역과 당시의 관습에 따라 다양한 피치의 악기들이 오늘날에도 시대악기 연주를 위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글/ 박광준 (www.recordermusic.net)
[flute & ] 8/9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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