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er & Life Story

소.음.같.음. 4. 페드로 메멜스도르프와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의 'Delight in Disorder' 본문

소.음.같.음

소.음.같.음. 4. 페드로 메멜스도르프와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의 'Delight in Disorder'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7. 5. 24. 09:51



Delight in Disorder

Pedro Memelsdorff recorder & Andreas Staier harpsichord



이 음반은 참 좋은데도 불구하고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연주자가 무척 생소한 이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물론, 하프시코드를 연주한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야 유명한 연주자지만 페드로 메멜스도르프라는 연주자의 이름은 꽤나 낯설 것 같네요. 이 음반은 리코더 애호가들 보다는 하프시코드 애호가들이나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팬들에게 더 친숙한 음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 년전 소니에서 이 음반을 완전 염가에 내놓았을 때는 무척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명반'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치를 몰라주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나마 도이치 하르모니아 문디의 50주년을 기념하는 50장 박스에는 포함되어 있어 나름의 위안을 삼곤 합니다.


페드로 메멜스도르프는 요즘 한창 주가 높은 연주자 모리스 슈테거의 스승입니다. 메멜스도르프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많지 않은 레코딩과 그 레코딩들 마저도 대다수가 바로크시대 이전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사실 이름 꽤나 알려진 연주자들은 바로크 중에서도 후기 바로크 작품들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직까지는 중세나 르네상스 작품들은 비인기 레퍼토리인 셈이죠. 그나마 이번에 소개하는 메멜스도르프의 음반은 1600년대 전후의 레퍼토리들로 채워져 있어서 애호가들에게도 나름 친숙한 곡들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음반의 분위기가 모리스 슈테거의 데뷔음반 'An Italian Ground (아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슈테거에게서 스승의 그림자가 보이는건 당연한 일이겠죠. 기회가 된다면 슈테거의 데뷔음반도 들어보시는면 좋겠습니다. 요즘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풋풋함 마저도 느껴지실 겁니다.


이 음반에는 1640~1680년 사이의 두 개의 악기를 위한 다양한 형태(Ayre, Battle, Suite, Ballet, Ground 등)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들이 다소 생소해보일 수는 있어도 들어보는 순간 아...하는 느낌을 받게하는 곡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은 여러 리코더 연주가들이 많이 연주했고, 녹음도 제법 있지만, 이 음반을 상위에 두고 싶은 이유는 연주가의 감성 때문입니다. 영국음악들, 특히 영화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나 켈틱음악들은 우리네 음악과 비슷한 공감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공통분모의 핵심에는 우리의 '한(恨)'과 비슷한 정서가 깔려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런 감성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연주자의 몫이라 생각하는데, 메멜스도르프야말로 탁월한 적임자라 생각합니다. 슬픔을 단순히 어둡게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곡의 성격에 맞게 구체화된 이야기로 풀어 나가는 재주가 그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곡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겠죠.


메멜스도르프 못지 않게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의 하프시코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건반의 간결함이 돋보입니다. 지나치게 챙챙거리지도 않고, 터치 또한 무겁지 않은 연주는 스산한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들풀들을 연상케 합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슈타이어의 솔로는 가식적이지 않은 아련함마저 동반합니다. 슈타이어는 메멜스도르프와 함께 1984년부터 듀오로 활동했지만, 활발하게 활동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1987년에 메멜스도르프가 자신의 앙상블 말라 푸니카를 창단하면서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에 전념하다보니 그 이후로는 더 활동이 뜸해졌던 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아무튼..말로만 떠들어봤자 실제로 들어봐야 느낌이 오겠죠? 아래 유튜브 플레이버튼을 눌러보세요! 이 음반의 첫 트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