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er & Life Story
바흐: 마태수난곡 BWV 244b 초기버전 - 성 토마스 합창단 & 크리스토프 빌러 본문
바흐: 마태수난곡 BWV 244b (초기 버전)
성 토마스 합창단 ㅣ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ㅣ 크리스토프 빌러 (지휘)
마틴 페졸트 (복음사가), 마티아스 바이헤르트 (예수) 외
Rondeau ㅣ ROP 4020/21/22
바흐의 수난곡은 1723년 그가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 칸토르로 취임하면서 당시의 전통에 따라 절기음악으로 작곡한 작품이다. 기록으로는 총 5개의 수난곡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완전한 형태로 실존하는 그의 작품은 요한수난곡과 마태수난곡 두 곡 뿐이다. 당시 라이프치히 주 교회의 전통에 따라 사순절 기간의 말미인 부활절 이틀 전 성 금요일에는 수난곡 연주가 열렸는데, 보수적인 성향의 성 토마스 교회는 다른 지역의 신교 교회들과는 달리 수난곡에 합주음악 형식을 도입하는 것에 제한을 두었다가 1721년에 이르러서야 베스퍼스 예배, 즉 저녁예배에 한해서만 허가했다. 당시 이 수난곡을 담당했던 이는 바로 바흐의 전임 칸토르인 요한 쿠나우였다. 이 때 연주되었던 쿠나우의 ‘마가 수난곡’은 쉬츠의 작품과 더불어 후에 바흐가 수난곡을 쓰는데 참고할 만한 모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흐는 1724년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의 요한수난곡 연주에 이어 1727년 4월 11일 성 토마스 교회에서 마태수난곡을 초연했다. 요한수난곡과 비슷한 유형과 구조, 비슷한 등장인물이 등장하지만, 마태수난곡은 그 보다 더 확장된 규모와 드라마틱한 서정성이 부각된 작품이다. 바흐는 종교음악뿐만 아니라 세속음악의 요소들까지도 이 작품에 도입하면서 그의 생애 최대 걸작을 만들어냈고, 특히 이중 합창단과 이중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극음악의 성격을 지닌 이 작품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고조시켰다. 마태수난곡의 가사는 마태복음 26~27장의 내용과 코랄가사, 그리고 피칸더(프리드리히 헨리치)가 쓴 자유가사로 되어 있는데, 무엇보다도 바흐에게 이 작품의 영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 것은 피칸더의 시였을 것이다. 그의 시가 대부분의 아리아에 가사로 사용되면서 바흐는 자신이 바랬던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마태수난곡은 바흐와 피칸더의 팀워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마태수난곡이 초연되었던 성 토마스 교회 내부 전경 >
현존하는 마태수난곡의 버전은 총 세 가지인데, 오늘날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버전은 1736년에 개정된 두 번째 버전이다. 1727년에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된 것은 초기 버전(BWV 244b)이고, 이후 1742년에 연주된 버전이 최종판본이다. 이 세 가지 버전은 조금씩 다른 형태의 모습을 보이지만, 전체적인 골격과 구조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연주될 당시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바흐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악기편성이나 곡의 선택이 조정되었을 것으로 본다. 최근 바흐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더불어 기존의 버전 외에 초기버전과 최종 판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연주와 레코딩도 등장하고 있는데, 초기버전의 최초녹음은 크리스토프 빌러가 이끄는 성 토마스 합창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연주(Rondeau), 그리고 최종판본의 최초녹음은 존 버트와 더니든 콘소트 & 플레이어즈의 녹음(Linn)이 있다. 여기서는 일단 초기버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마태수난곡의 초기버전은 두 번째 버전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일단 두 개의 합창단, 그리고 두 개의 오케스트라를 통한 스테레오 효과는 동일하지만, 초기버전에서의 콘티누오 구성은 조금 달랐다. 당시 오케스트라는 두 개로 양분화 되어 있었지만, 콘티누오는 한 그룹에만 속해 있었다. 1727년의 두 번째 버전에서야 바흐는 콘티누오 파트도 오케스트라의 각 그룹에 함께 포함시켰다. 또한, 초기버전에는 1부 마지막인 29번 곡 ‘오 사람들아 그대들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슬퍼하라’ 대신 단순 코랄만 등장한다. 17번 코랄도 선율은 같지만 다른 내용의 코랄이었다. 그리고, 56번의 레치타티보와 57번의 베이스 아리아는 초기버전에서 비올라 다 감바 대신 류트가 오블리가토 선율을 담당했었다. 이처럼 초기버전과 두 번째 버전 사이에는 몇 가지 변경된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 굵직한 음악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2006년 녹음된 크리스토프 빌러의 초기버전 녹음은 마태수난곡이 초연되었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연주한 녹음이다. 성 토마스 교회의 16대 칸토르인 빌러는 이 연주에서 바흐가 이 곡을 초연할 당시의 상황을 고려, 복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최근 급속하게 번지는 조슈아 리프킨의 ‘최소편성’에 따른 연주는 아니지만, 빌러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연주 또한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바흐가 수난곡을 작곡할 당시 사순절 기간에 합주음악이 금기시되었던 만큼 성 금요일의 연주에 많은 인력을 동원하는 게 가능했다는 내용은 이미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반 성인합창이 아닌 소년들의 정교하고 섬세한 미성의 군집은 작품에 내재된 감성을 부추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만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자신을 팔 자에 관해 언급할 때 제자들의 혼란스런 모습이나, 빌라도 총독 앞에서 군중들이 격노하는 장면 등에서 군중들의 하나하나의 개개인의 모습을 경험하긴 어렵다. 게다가 분노에 찬 군중의 분위기를 소년들의 고운 음성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느낌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소년합창단의 섬세한 표현력은 전체 흐름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곤 한다.
< 성 토마스 합창단 & 크리스토프 빌러 >
빌러는 최초버전의 연주에서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여러 연주가들의 일반적인 연주들에 비해 다소 느린 템포 - 물론, 칼 리히터만큼은 아니다 - 는 기존의 연주들에 비해 생동감은 떨어지지만, 텍스트의 의미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심지어 격렬함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에서조차 과하지 않은 진행을 고집하는 그의 손놀림 덕분에 회중은 격렬한 다이내믹을 통한 카타르시스 대신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구속사를 위해 겪어야만 했던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전체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야 할 복음사가 마틴 페졸트는 단순한 낭독이나 해설을 넘어서서 예수의 고통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오늘날 1736년의 두 번째 버전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최초버전을 연주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까? 초기버전은 나중 버전에 비해 분명히 덜 세련된 모습이다. 하지만, 이 판본을 통해 마태수난곡이라는 대작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고, 연주될 당시의 시대적, 공간적 상황을 가늠해보면서 바흐의 의도를 되짚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시도는 단순히 자료적인 차원이나 연주가 개인의 업적을 넘어서서 바흐 이전과 이후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박광준 (goldedge@recordermusic.net)
AppZine Classic 2012년 6월 9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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