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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일상

대한민국에서의 리코더의 오늘과 내일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0. 11. 25. 11:46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 리코더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지도 30년은 넘은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리코더를 '피리'라고 부르는 이들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리코더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거의 대부분 독일식 운지로만 교육을 받았었는데, 이젠 바로크식으로 배우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연주악기로서의 리코더가 초등교육에서도 어느 정도는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젠 국내 대학교에 리코더 전공도 생겨서 벌써 상당수의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그 학생들이 이젠 리코더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수학하고 있다. 그 이전 세대의 리코더인들은 당시 전공과목이 없던 관계로 국내에서는 플루트로 시작하고, 이후 유럽으로 떠나서 리코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1세대들이 이제 국내로 들어와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는 것이 요즈음이다. 이젠 리코더를 전공한다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물론, 리코더 전공을 갖고 있는 학교가 2개 정도 밖에는 안 되지만...

이렇듯 여건은 상당히 좋아졌다. 하지만,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왠지 상당히 주춤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음악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은 많이 채워졌는데, 리코더 음악의 발전 성과(?)는 미미하다. 분명 예전에 비해 오늘날 상당히 수준높은 연주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이젠 마음만 먹으면 아마추어들게도 배움의 길이 열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음악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다. 전국적으로 수 많은 교사들과 학생들로 구성된 단체들이 있어도, 그들이 만나는 리코더 음악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크로스오버'에 가깝다. 적당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국악이 외국으로 수출되어 외국인들이  국악기로 연주를 하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재즈나 영화음악, 편곡된 클래식음악들을 연주한다면 그 악기는 과연 자신이 가진 본질적인 소리를 들려 준다고 볼 수 있을까? 지금 국내의 여러 현실들을 보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즐거움을 우선으로 하는 아마추어들에게 본질 운운하며 근본을 찾아야 한다는 둥의 강요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들고 있는 악기의 태생과 근본이 어떤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현실을 보면 국내의 리코더 음악은 전문가들의 그룹과 아마추어의 그룹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다는 느낌이다.

최근 리코더 뿐만 아니라 바로크시대의 현악기, 건반악기들을 전공한 이들이 속속들이 귀국하고 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의 고음악계의 상황은 좋지만은 않아서 이들 또한 바로크만 고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들이 많다. 때문에 바로크, 고음악 연주가들의 연주회들을 보면 심심찮게 모던악기 연주들도 종종 눈에 띄곤 한다. 어쩌면 이런 점은 리코더와는 달리 다른 악기 연주자들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이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데, 요즘의 상황이 마치 1900년대 초반에 영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고음악 부흥운동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시에 벌어진 운동은 어느 한 악기만을 위한 부흥이 아니라 관,현,건반 모든 분야에서 17~18세기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어찌보면 리코더의 경우도 단독으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많지 않기 때문에 현악기나 건반악기들과의 공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상호보완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리코더의 경우 초등 3,4학년에 필수과정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접근성 면에서는 더 좋은 편이지만, 사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장난감 취급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전문음악으로 먼저 국내에 보급된 후에 교육과정으로 채택되었다면 달랐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과정으로부터 점차 발전했기 때문에 그 인식을 바꾸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악기시장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국내에서 생산되는 리코더는 Ag사의 리코더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다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도 우위에 있다. 또한, 초등학교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도 그 보급율은 상당히 높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경우 좀 더 전문성을 갖고자 하는 이들의 선택에서는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Al사와 Y사의 제품들은 국내 Ag사의 제품보다 가격은 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품질면에서는 그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를 아는 이들은 일본제품을 선택한다. 국내제품의 경우 여전히 저렴한 가격을 유지해서 가격면에서는 만족스럽지만, 품질면에서는 나아졌다고 보기가 어렵다. 때문에 Ag사의 제품은 수업용 교재나 가격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등에서만 선택받는 편이다. 물론, 그 수요가 엄청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도 매출은 상당할 것이다. 목관의 경우 사실 업체를 통한 공급은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다. 대부분의 목관은 독일, 스위스, 일본 등지에서 수입되는 제품들이다. 그래도 수제품의 경우 국내에도 한 명의 제작가가 등장해서 고무적인 상황이다. 어찌됐건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나라의 음악은 그 나라의 악기제작과도 상당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크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음악의 흐름을 주도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네덜란드 지방에서의 악기제작이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던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수백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가 하나와도 같아서 악기들을 공유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국내의 악기생산과 음악의 발전은 여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오늘날 음악 강대국이 악기제작 강대국과 거의 일치하는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느 길로 가야 하는 걸까? 조심스럽게 개인적인 의견을 정리해보면 첫째로, 무엇보다 통합, 화합이 필요하다. 리코더 연주자, 교사, 학생, 고음악 연주자 및 관계자, 악기제작가와의 소통과 단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20세기 초에 벌어졌던 고음악 부흥운동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아놀드 돌메치 같은 인물이 오늘 대한민국에 필요하고, 그의 조력자들이 또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면보다 사명감을 갖고 매진하는게 우선이다. 어떤 목표를 갖고 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로, 본질로의 접근이다. 리코더가 단순히 다른 악기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상황이어서는 안 된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리코더를 대할 때, 악기 자체의 성격과 근본을 알아야 한다. 액세서리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부분이다. 본질은 감춘 채 액세서리로 치장만 하다가는 결국 부작용에 다다르고 말 것이다. 셋째, 든든한 기반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밥도 먹지 못하고 사명감만 갖고 일에 매달릴순 없다. 희망사항이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든 기업체의 협력이든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막연할 수도 있겠지만, 리코더와 고음악인들이 바로크 음악의 가치를 증명하기만 한다면 그리 먼 나라 이야기만도 아닐 것이다. 넷째로, 애호가들의 든든한 지원이 필요하다. 전문연주가나 아마추어들의 공연장에 발길을 보내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국내 연주자들의 연주수준이 유럽의 거장들에게 밀리는 것은 사실이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객이 없는 연주자는 존재할 수 없고, 그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인내심을 갖고, 사명감을 갖고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리코더 음악을 살리는 길이다. 이젠 국내에도 고음악 단체들이 작게든, 크게든 생겨나고 있다. 이는 무척이나 반갑고 기쁜 소식이다. 단지 바라는 것은 이런 단체의 창단 배경이 편가르기나 사익만을 위한 것들이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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