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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슈테거 & 장 롱도 [2016/11/24 금호아트홀] 본문

리뷰/공연 & 전시

모리스 슈테거 & 장 롱도 [2016/11/24 금호아트홀]

브뤼헨 2016.11.25 14:54







드디어 그가 왔다. 


모리스 슈테거...!!


20여년전 그의 첫 데뷔 음반을 들은 후로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기다려왔던 그 이름.

그가 왔다. 하프시코디스트 장 롱도와 함께...


이번 글은 리뷰라기 보다는 후기라고 표현하는게 나을 듯...

왜냐면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 될 테니까...

팬심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애당초 객관성을 기대하기란 무리 아니던가...



2016년 11월 24일 오후 8시...금호아트홀에서는 리코더의 거장(누군가는 리코더의 파가니니라고...ㅎㅎ) 모리스 슈테거와 장 롱도의 듀오 연주회가 열렸다. 공연소식은 작년 네이버 카페인 '슈만과 클라라'에서 금호아트홀 2016년 스케쥴을 보고 알게 되었고, 조기예매 소식까지 전해져 자그마치 1년 전에 예매를 감행했다. 큰아들 주원이와 함께 보려고 2장을... 둘째는 이제 3살이니 같이 공연장 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함께 하지 못한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그렇게 1년을 기다렸던 공연날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 기분은 도대체 뭔지... 내가 연주하는 것도 아닌데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이란.... 공연날 당일날에는 그 떨림과 설렘이 더 증폭되는 느낌까지 받았다. 퇴근후 금호아트홀에서 주원이와 만나고, 아내와 둘째 주호와는 잠시 헤어짐.


표를 찾고, 그렇게 기다려왔던 연주자를 기다린다. 두근...두근...


잠시 후 모리스 슈테거와 장 롱도가 입장한다. 전혀 경직되지 않은 편안한 표정과 동작으로, 마치 동네 친구 만나러 나오듯이 걸어 나온다. 축구팬들이 호날두를 우리형이라고 하듯이 갑자기 슈테거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뭐..나보다 4살 위니 형이라 해도 상관없을듯. ㅎㅎ 옆에 앉은 주원이도 나름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이 녀석은 슈테거에게 사인받겠다고 리코더까지 챙겨왔다. 


그의 첫 연주가 시작된다. 


베라치니의 소나타 a단조. 리코더로도 많이 연주되지만, 원곡이 바이올린곡인 만큼 바이올린으로 더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다. 그런데...세상에...슈테거는 연주회 첫 곡부터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악장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하며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었고, 특유의 몰아치는 폭풍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냈다. 첫 내한이긴 하지만, 이미 유튜브나 각종 영상들을 통해서 그의 연주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미 익숙한 몸동작을 실연에서 마주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들썩여지는... 대단한 퍼포먼스였다. 그의 데뷔 음반 때부터 그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다이내믹(Dynamic)'이 아닐까? 느리고 빠른 악장의 대비는 물론이고, 한 악장 내에서도 극명하게 존재감을 살리는 다이내믹의 대비 효과는 엄청났다. 바이올린에 비해 화려하지 않은 음색 때문에 빈약하게 들릴 수 있는 작품을 슈테거는 그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원곡을 큰 장식없이 들은 경험이 없는 관객이라면, 어제의 휘황찬란한 장식과 즉흥이 곁들인 연주에서 원곡의 선율을 짐작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이어서 우첼리니와 로시, 프레스코발디와 폰타나를 연이어 연주했다. 마치 하나의 모음곡을 연주하듯이 끊김없이 자연스럽게 연결해간 네 곡의 연주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 했다. 슈테거는 연주 뿐만 아니라 순간 순간 넘어가는 대목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타고난 연주가이자 재주꾼이라고 밖에는 뭐라 할 말이... 자신의 등장이 끝나고 장 롱도에게 다음을 넘겨 주는 순간 조차도 연극배우 같은 표정연기를 통해 극(?)의 흐름을 이어갔다. 정확하진 않으나 네 곡의 초기 작품들을 연주할 때 가나시(Ganassi) 소프라노와 G알토를 번갈아 사용했던 것 같다. 이 초기 작품 연주에서 슈테거는 연주하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금호아트홀이 고음악 연주하기 좋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슈테거는 자신의 연주에서 '어떻게' 공간을 활용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공간의 잔향과 소리의 퍼져 나가는 속도와 범위까지 모두 머릿속에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스스로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즐겼을 것이다. 


1부 마지막은 코렐리의 소나타 작품 5의 8번. 아마도 얼마전 고인이 된 에른스트 마이어의 리코더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음반에서 익숙하게 들어왔던 마이어의 사운드가 눈 앞에서 펼쳐졌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마이어야말로 슈테거의 스타일을 완성한 제작가라고 생각한다. 만약 마이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슈테거 사운드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호흡을 굉장히 유용하고 폭넓게 사용하는 슈테거에게 마이어의 악기는 최적의 모델이겠다. 와이드한 음색과, 최저음부터 최고음까지 꽤 좋은 밸런스를 갖고 있고, 선명하고 또렷한 음색은 아니지만 포근하면서도 때로는 엄청난 폭발력까지 만끽하게 해주는 악기가 마이어의 리코더라고 생각한다. 도로테 오베를링어나 에릭 보스그라프 등의 연주자들도 마이어의 악기를 쓰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슈테거야말로 마이어 악기의 장점들을 최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연주자가 아닐까 싶다. 그는 거의 곡예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인다. 


첫 곡인 베라치니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었을까. 관객들은 어느 정도 그의 스타일을 예견할 수도 있었겠다. 그럼에도 코렐리에서 예기치 못한 장면들을 몇차례 선보이면서 관객들에게 리코더의 한계란 없다!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증명아닌 증명을 하는 것 같았다. 최저음에서 상당히 큰 볼륨을 유지하고, 최고음에서도 최상의 깨끗한 음색을 뽑아낸 연주. 이 곡 또한 바이올린이 원곡이라 바이올린 연주와 비교될 수 있는데, 슈테거는 그 또한 무시해버렸다. 마지막 악장인 지그에서는 플루터링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테러까지 감행했다. ㅎㅎ 무대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았던 터라 그의 손놀림도 유심히 봤는데, 이럴수가! 그는 상당히 다양한 가운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장식음에서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스케일에서조차 '이 정도로 다양한 가운지를 사용할 수 있어!'라고 과시하려는 것처럼... 리코더라는 악기는 음정이 상당히 예민하다보니 아무리 잘 만들어진 리코더라고 해도 부는 사람의 호흡에 따라 특정 음정에서 정확하게 안 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마도 슈테거는 자신이 소유한 각각의 리코더의 특성에 맞게 정확한 음정을 위해 다양한 가운지를 구사하는 것 같다.


중간 휴식.


후반부는 삼마르티니의 작품 2의 4번, 그리고 장 롱도의 독주로 스카를랏티의 소나타 두 곡, 그리고 스카를랏티의 '라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연주됐다. 이미 음반으로 익숙했던 소프라노 리코더로 연주하는 삼마르티니의 소나타. 서정적인 느린 악장과 밝고 경쾌한 빠른 악장에서 슈테거는 고음역의 소프라노(보통 생각하는 소프라노의 음역보다 실제로는 한 옥타브 더 높다.)리코더로 구사하기 어려운 표현력을 선보였다.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서 섬세함까지 자유자재로 연출하는 그에게 한계란 없어보였다. 


이어진 장 롱도의 스카를랏티 소나타 K. 213, 119. 뒤늦게 어제 그의 외모를 설명하자면, 위 사진보다 더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헤어 스타일이었다.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등장해서 시작하는 연주. 두 곡의 소나타 중에서 특히 두 번째 K. 119가 그에게 더 어울리는 듯 했는데, 뭐랄까...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음반으로 들었던 그의 연주는 상당히 개성 넘치고, 화끈한 스타일이었는데 그런 느낌을 어제는 경험하기 힘들었다. 연주 자체는 좋았지만, 장 롱도의 기존 스타일과는 달랐다. 이 부분은 슈테거와 듀오로 연주한 앞의 곡들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악기를 만난 것 같았다. 어제 연주회의 레퍼토리는 모두 이탈리아 작품들이었고, 슈테거와 롱도의 장기라 할 만한 작품들이었다. 그에 걸맞게 이탈리안 하프시코드였으면 더 좋았겠다만, 국내에 이탈리안 하프시코드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을테고.... 플레미쉬 중에서도 강렬한 음색의 악기였다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어제의 악기는 너무 상냥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갖고 있었다. 


앞서 슈테거와 함께 했던 듀오에서는 혹시 슈테거를 돋보이게 하려고 했나 싶었지만, 자신의 독주 무대에서조차 소리가 뻗어나오지 못하는 걸 보면서 뭔가 악기에 따른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보통은 리코더가 하프시코드와 함께 연주하는 경우에 하프시코드의 음량이 지나치게 커서 뚜껑을 반쯤 닫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제는 뚜껑을 완전히 열어놓은 상태에서도 반대로 리코더에 압도당하는 음량이었다. 내심 연주자가 얼마나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독주에서도 일부 미스터치처럼 보였던 부분들도 미스터치라기 보다는 일부 건반이 반응속도가 달랐던 문제처럼 보였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와 달리 해머가 줄을 때리는 방식이 아니라 각각의 건반에 연결된 잭이 줄을 뜯는 방식이기 때문에 반응속도도 피아노보다 느리다. 어제의 경우 전체 건반의 밸런스가 일률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연주자가 악기를 손보면서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정황상 조율할 시간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개인적인 추측에 따른 것일 뿐...ㅎㅎ


마지막 스카를랏티의 폴리아 즉흥곡은 슈테거의 음반 'Una Follia Di Napoli' 에 실린 곡이다. 연주회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제격인 곡. 음반과 다른 점이라면 음반에서는 다양한 콘티누오 악기들이 여러 장면을 연출한 것과 달리 실연에서는 하프시코드가 여러 악기 몫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는 것. 때문에 다른 대목보다 하프시코드의 역할이 더 아쉬웠다. 슈테거나 오베를링어의 음반들을 들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연주자도 중요하지만, 콘티누오 파트의 성향에 따라 최종 결과물이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콘티누오에서 조금 더 밀어 붙일 수 있는 힘이 모자랐다는 게 아쉬웠다. 마지막 곡에서는 슈테거의 리코더도 침 막힘 현상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하지만, 워낙 경험도 많은 연주자다보니 빠른 순발력으로 들이마시면서 빠른 패시지에서도 큰 어려움없이 연주를 이어갔다. 


마지막 변주가 끝나고 '쨍' 하는 울림이 끝나자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앙코르로는 딱 한 곡만 연주했다. 박수가 부족했던 건 아니었는데, 사전에 그렇게 계획했던 것 같다. 비발디 협주곡 D장조 'La Pastorella'의 2악장을 들려주며 연주자는 무대를 떠났다. 손을 흔들면서...ㅎㅎ


그렇게 연주회는 끝났다.


모리스 슈테거와 장 롱도의 듀오는 사실상 올해 가을에 결성되었다. 슈테거의 공연 스케쥴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울산과 서울에서 열린 이번 연주회가 듀오 결성 이후 첫 무대였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직은 손발이 조금 덜 맞는 느낌도 들었다. 어쩌면 데뷔때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 온 나오키 키타야와 함께 연주했다면 더 수월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개성 강한 두 젊은 연주자들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모리스 슈테거 하면 현란한 기교로 무장한 테크니션 정도로 보는 시선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아마도 어제 연주회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비슷하게 느꼈으리라... 그리고, 어제 연주회는 모리스 슈테거의 음악적 고향은 역시 이탈리아라는 것을 분명하게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음반의 절반 이상이 이탈리아 레퍼토리인 슈테거... 이왕 이쪽에 강점을 갖고 있다면, 피오렌자나 마르첼로, 코렐리 등의 음반들도 녹음해보면 어떨런지...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려서일까. 연주회가 끝나서도 마치 내 연주를 한 것 마냥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다. 공연 후 주원이와 함께 사인회를 기다렸다. 개인적으로 사인받으려고 갖고 나온 음반수가 꽤 많아서 제일 마지막 줄에 섰다. 다른 분들께 민폐가 될 것 같아서...ㅎㅎ 슈테거에게 CD 보따리를 펼쳐 놓았더니 꽤 놀라며 즐거워했다. 데뷔 음반을 보면서 자기가 베이비일 때라며... 슈테거 음반은 10장 넘게 갖고 오면서 장 롱도건 단 한 장..ㅋ 피곤한 연주자들에게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갖고 온 CD에 전부 사인을 받았다. 주원이는 리코더 중간관 뒷면에 금색펜으로 사인을 받았다. 슈테거가 조금 불어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에 주원이는 멈칫했고... 관계자 분이 아이가 부끄러워한다고 대신 덧붙여줬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같이 사진 촬영... 다들 빨리 퇴근하고 싶을텐데, 아저씨 한 명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참 죄송했다는...





주원이는 집에 오는 중에 받은 사인이 지워질까봐 조심스레 리코더를 들고 왔다. 그런데 일반 유성펜과 다른지 일부 번지는 자국이 있어서 알콜 묻힌 면봉으로 번진 부분을 닦아주고, 셀로판 테이프로 붙여줬다.


이번 연주회는 주원이와 단 둘이 감상한 연주회로는 처음이었다. 아빠와 아들의 추억 만들기를 지원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둘째 주호에게도 감사를... 온 가족이 함께 연주회장을 찾으려면 앞으로 5~6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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